2020. 7. 7. 06:53ㆍ비행 잘 하고 싶어용/ON
< 5 life long skills my cabin crew job taught me >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직장인 승무원으로서 일하면서 내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일반 직장과는 다르지만 또 직장은 직장이다 보니 비슷한 점들도 있는 것 같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예비 승무원분들은 아래 자질들을 면접 시 어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
1. 인내심 _ Patience Is Everything
승무원 자질의 8할은 인내심이라고 할 정도로 인내심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비행기를 타면 언어가 통하지 않은 승객들도 있고,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승객들이 있고,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승객, 이착류하는데 안전벨트 풀어 헤치고 기내 뛰어다니는 꼬마 승객들, 커피 요청하셔서 가져다드리면 그제야 설탕, 크림도 가져다 달라고 말해 두 번씩 일하게 만드는 손님들까지..
이런 승객을 대할 때마다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마음가짐으로 웃으면서 응대해야 한다.
승객분들만이 내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가 날씨나 기체결함으로 몇 시간씩 지연되어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비일비재하고 (이때 승객들의 컴플레인은 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업이다 보니 작은 업무 하나에도 여러 더블체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 비행 시 반복되는 절차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실수 없이 진행해야 한다.
승무원이란 직업은 나에게 사람과 시간/지연, 반복되는 절차에 강한 인내심을 길러주었다.
2. 꼼꼼함 _ Attention to Detail
우리 회사는 매 비행 전 메이크업과 유니폼 상태를 검사 한다. 이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유니폼에 주름진 곳은 없는지, 구두는 번쩍번쩍 광이 나는지, 단추는 떨어진 곳 없이 잘 달려있는지, 머리는 잔머리 없이 깔끔하게 묶었는지, 유니폼 모자는 눈썹 위 1.5cm 위에 위치해 있는지, 손톱과 립스틱 색의 매치가 잘 되는지 등 작은 부분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한다.
승무원이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깔끔한 옷차림과 단정한 메이크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객실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꼼꼼하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있다.
승객들이 기내 탑승 전 짧은 시간 안에 좌석벨트가 가지런히 X자로 놓여 있는지, 머리 받침대 커버가 주름 없이 잘 펴져 있는지, 담요 및 장거리 비행 시 제공되는 어메니티 킷이 가지런히 잘 놓여있는지, safety card가 제자리에 잘 꽂혀 있는지 확인하고 정리해야 한다.
또 우리 회사는 손님들에게 음료, 식사 제공 시 보이는 presentation을 아주 아주 아주 중요시한다. (강조를 아무리 해도 부족한 느낌 ㅎㅎ)
손님이 커피를 요청하면 컵 우측에 냅킨을 깔고 (회사 로고가 앞으로 보여야 한다) 그 위에 설탕, 우유, 머들러를 놓는 순서가 정해져 있고, 식사 또한 매뉴얼대로 단정하게 정리하여 제공해야 한다. 버터 하나까지 놓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승무원들 외적 이미지부터 제공되는 서비스 하나하나에 높은 기준이 정해져 있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 일할 때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높은 기준들이 중동 항공사들을 프리미엄 항공사로 만들고 승객분들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매 비행 시,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 집에서 덤벙댄다고 ‘털팔이’로 불리던 내 모습을 숨기고, 오차 없이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오늘도 노력한다.
3. 대화의 왕도 _ Master of Small Talk
승무원의 가장 큰 혜택 중 하나가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인종부터 직업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특권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승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승객들의 편의를 잘 살피고 돕기 위해서도 승객과의 interaction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 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색함을 풀어주는 간단한 잡담/수다 (small talk) 실력이 늘게 되었다. 특히 승객과의 1:1 서비스가 많은 비즈니스석 담당 승무원 선배님들은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대화의 왕도들이다.
내가 주로 승객분들께 말을 걸 때는 스몰토크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인 날씨/직업/거주지로 시작한다. 승객이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탄 경우 손님이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여행이 목적인 손님들과는 여행지에서의 계획 등을 물어본다.
승무원 일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배우고 느낀 것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지식과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본 경험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다. 특히나 비행기에 관한 숨겨진 비밀이나 재밌었던 비행썰은 모든 승객이 재밌어하는 대화거리이다.
어떻게 보면 의무적으로 친밀함을 만들어야 하기에 시작된 대화에서 오히려 내가 더 재밌는 정보들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승객들은 자신들의 휴대폰 사진첩을 보여주며 즐거웠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맛집과 관광 명소 정보를 공유해 주기도 하고, 승객 출신 나라에 최근 어떤 이슈가 있는지 코로나 현황이 어떤지 생생한 현지 뉴스를 듣게 된다.
최근 비행에서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모발이식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유럽인 아저씨가 모발이식 수술썰을 풀어주셨다. 그분 덕에 모발이식은 터키가 싸고 잘한다는 정보와 또 눈물 나도록 아프다는 잡학 지식이 또 하나 늘었다 :)
말수가 적은 나에게 낯선 사람에게 말을 먼저 거는 게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는데, 근육을 키워가는 것처럼 나의 대화 실력이 차차 늘어가는걸 보니 정말 노력해서 안되는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4. 시간 엄수 _ Punctuality
‘시간이 돈이다’
일상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정시율이 중요한 항공업계에서는 말 그대로 일분일초가 돈이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지각하게 되면 브리핑에서 받는 중요한 비행 정보를 받지 못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비행기를 놓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 되기 때문에 시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내가 늦은 1분 때문에 다른 대체 승무원을 찾아야 하는 회사와 동료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알기에 모든 내 시계는 5분 앞당겨져 있고 비행이 없을 때도 시간과 시계를 확인하는 게 습관화되었다.
지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종종 지각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ㅎㅎ 제발 지각은 꿈에서만!
5. 효율성 _ Work Smarter, not Harder
비행 시작한 지 1달도 안되던 초 베이비 승무원 시절 사무장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 I see you really work hard but learn to work SMARTER ”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효율적으로 하는게 더 중요해 ”
무조건 ‘열일’하는 게 어느 직장에서든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비행 연차가 쌓이다 보이 그 조언이 이해가 되었다.
승무원이란 직업은 많은 안전 업무와 기내 서비스, 승객들의 요구사항 응대 등의 수많은 업무를 한정된 시간동안 해내야 한다. 어느 업무 하나도 빠트릴 수 없기에 매 비행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참 힘들다. 그렇기에 ‘효율성’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우선순위를 만들어 중요한 일부터 빠르게 해결하고, 또 일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해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꼼수?, 트릭들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들어 복도 석에 앉은 손님이 물을 요청하여 가져다 드리면, 그 모습을 본 옆좌석이나 창가 손님이 따라 음료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두 번 왔다 갔다 하는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처음 복도석 손님 주문을 받을 때부터 옆자리, 창가 승객에게도 혹시 음료 필요하신지 미리 물어본다.
그리고 승객들이 많이 요청하는 사항에 따라 갤리 탑에 미리 세팅해 두어 카트를 열거나 컨테이너를 열어야 하는 행동 하나라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게으르게 일을 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귀중한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매 비행을 단거리 달리기 하듯 전력질주하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요령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마라톤을 완주하듯 일을 하는 게 즐겁고 오래 비행 할 수 있는 비결이란걸 배웠다.
아직 배울 것이 더 많기에 늘 배우는 자세를 잊지 않고 승객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하는 승무원이 되어야지!